이제 믿음으로 뛰어들 시간입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여호수아 1장 10~11절)
인생에는 말을 그치고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기도했다면, 이제는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순간입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앞에 도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진영을 돌아보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하였다"(수 1:10).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실행에 옮겨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강물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요단강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평소엔 폭 30미터, 수심 3미터 정도의 강입니다. 하지만 봄이 되면 눈 녹은 물이 쏟아져 내려 거대하고 위험한 급류로 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주한건 바로 이 홍수철의 요단강이었습니다. 그 광경과 소리는 압도적이었을 것입니다.
수천 명이 건널다리도, 나룻배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적만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40년 전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그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먼저 강물로 들어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시험이었습니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증거로 먼저 발을 담그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요단강은 무엇입니까?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벽,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한계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때로는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시간 부족, 자원 부족 같은 장애물에 압도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전하십시오. 두려움을 뚫고 전진하십시오. 용기를 내어 과감히 나아가십시오!
첫걸음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믿음이 자라나고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실함이 천국의 보상을 결정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누가복음 16장 10~11절)
천국이 지루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은 구름 위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창조하셨고, 관심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영적 은사, 열정, 능력, 성격, 경험을 통해 여러분을 빚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땅에서만 특별하게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주식 독특한 은사와 재능을 영원한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것입니다.
물론 천국에서도 일을 하게 되겠지만 그곳에서의 일은 이 땅에서의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천국에서는 일이 즐거울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거나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항상 의미있고, 즐겁고, 보람찬 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꾸던 직업을 영원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여러분이 맡게 될 구체적인 역할이나 책임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과 책임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현재 삶은 영원을 위한 준비 과정이자 한시적인 임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이 맡은 책임을 얼마나 신뢰할 만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더 많은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지만, 천국에서의 보상과 책임은 이 땅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재정, 시간, 인간관계, 건강, 기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는 여러분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이 제공하는 모든 놀라운 것들을 여러분이 누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에 신실하기로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천국에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맡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당신을 지탱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이사야 26장 3절)
힘든 시기를 인내하며 견디어 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 목적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이유, 즉 목적을 모를 때는 쉽게 지치고 낙담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왜 이 땅에 왔는지를 이해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특히 인생의 큰 전환점에서는 이 목적을 굳게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사야 26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자기를 의지하고 마음이 한결같은 자에게 완전한 평안을 주신다"
분명한 삶의 목적의식은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핵심 자질인 끈기와 회복탄력성을 기리는 토대가 됩니다. 법조계, 스포츠, 비즈니스, 교육, 정부, 사역, 자원봉사 등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이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끈기란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꿋꿋이 전진하게 하는 내적 힘입니다. 인생에서, 특히 힘든 시기에 우리는 이 끈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회복탄력성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이는 실패를 경험했거나 환경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 좌절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집중할 때, 우리는 끈기와 회복탄력성을 얻게 됩니다. 실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인생 목적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목적을 굳게 붙드세요.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 것, 즉 영원한 것에 우리 인생의 닻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삶을 닻 내릴때, 우리는 끈기와 회복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시편 33편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계획은 변함이 없고, 그의 목적은 어느 세대에나 한결같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목표는 끈기와 회복력을 가지고 힘든 시기를 견디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질을 갖추면 우리는 단순히 힘든 시기를 견뎌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해결책을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히브리서 11장 11절)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단련하실 때, 때로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방법 테스트'(How Test)라고 부릅니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 마음에 떠오를 때, 여러분은 이 테스트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여 그 땅을 소유하게 하고, 위대한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온 땅에 번성할 것이라는 놀라운 약속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고,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는 후에 이스라엘이라 불리게 될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지만, 아내의 임신 소식은 계속 기다려야 했습니다. 99세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약속의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명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브라함과 사라에게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웃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라는 의문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방법 테스트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히 11:12, 새번역). 결국 마지막에 웃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해결책을 다 알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다음 단계를 항상 알기를 바라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분만의 방식과 시간에 일을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기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보일 때 여러분은 예수님을 더욱 닮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믿음은 다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기쁨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설명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브리서 11장 9절)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7천 가지가 넘는 풍성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약속이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험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될 때 찾아오는 시간 테스트입니다.
"주님,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이 마음에 떠오를 때, 여러분은 시간 테스트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습니까? 제 결혼 생활은 언제 변화될까요? 언제쯤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졸업은 언제 할수 있을까요? 아이는 언제 가질 수 있을까요? 승진은 언제 될까요?"
아브라함도 이러한 시간 테스트를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낯선 땅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후에도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3대에 걸쳐 기본적으로 유목민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시간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계속해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약속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그 약속 중 일부는 우리의 지상 생활이 끝난 후에야 성취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보다는 신뢰를 요구하십니다. 설명은 일시적인 안도를 줄 수 있지만, 약속에 대한 믿음은 영원한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한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이스라엘에 도착했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그는 유목민처럼 천막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주님, 정말 이것이 약속의 땅인가요? 언제 이 땅이 진정 우리의 것이 될까요?" 하지만 이러한 의문 속에서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시간 테스트를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 말입니다. "주님, 언제쯤일까요? 제 삶의 어려움들, 관계와 재정, 건강과 미래... 이 모든 것을 언제 해결해주실 건가요?" 이런 질문들이 마음에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언젠가 될지 모르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기다림의 시간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그분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드리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키워주실 것입니다.
서로의 거울이 되어 : 우리의 성장을 위해 마련된 소그룹이라는 선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에베소서 4:25)
참된 변화의 여정에는 진실한 영적 동역자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홀로 그 변화를 이루기 어려운 순간을 마주합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특히 솔직하고 진실하게 소통할 수 있는 소수의 신뢰할 만한 동료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이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 선수가 너무 강해 혼자서는 막아낼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인생의 어떤 도전들은 팀워크로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모임이 아닌 특별한 소그룹입니다. 이 그룹은 우리의 약점과 문제들, 즉 상처, 습관, 관계의 단절 등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몇명의 신뢰할 만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이런 신뢰와 나눔의 관계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빚어집니다. 소그룹의 시작은 정기적인 모임에서 출발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성원 간의 신뢰가 축적되고, 안전한 소통의 장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는 우리가 혼자 힘으로는 이루기 힘든 변화를 가능케 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됩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자 자기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 낭비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약점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소그룹 안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정직함이야말로 영적 성장의 핵심입니다.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동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정직하지 못하게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과도한 의식입니다. 종종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보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에 더 집중합니다. 이는 영적 성장에 큰 장애물이 됩니다.
하지만 믿음의 동료들로 구성된 소그룹에서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변화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성장을 돕는 가족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장 14~15절)
성숙한 가정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서로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가족 구성원들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요? 다음은 가족 구성원의 성장을 돕는 두 가지 효과적인 방법과 피해야 할 두가지 방법입니다.
서로의 성장을 돕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보기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이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15절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선생과 주로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그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쉬운). 자녀들은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배웁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삶에 반영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자녀와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자녀의 성장을 도울 귀중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7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십시오. 여러분은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나 이렇에 대하여 항상 이야기하십시오."
다음은 가족의 성장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실수들입니다.
비판을 통해. 잔소리, 비판, 불평은 사람의 변화를 돕는데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왜그럴까요? 비판할 때는 우리가 바라는 긍정적인 변화에 촛점을 맞추기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지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상대방의 의욕을 꺽고 변화의 동기를 약화시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돋우지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키우십시오"(쉬운).
비교를 통해. 모든 사람은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는 결코 효과가 없습니다. 비교는 모든 관계에 치명적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4절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일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자랑할 일이 자기에게만 있을 것입니다"(쉬운).
성경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로운 지침과 감동적인 예시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지지하라고 부르십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을 연습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깨끗한 손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힘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욥기 17장 9절)
다윗의 이 진실한 고백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울립니다. "내가 오랫동안 주님의 길에서 벗어났고, ... 주께서 구하시는 것은 마음속의 진실입니다. ... 주님의 세탁기에 나를 담그소서, 이 몸이 깨끗해져 나오리다. 나를 비벼 빠소서. 내가 눈같이 희게 살아가리다. ... 하나님, 내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시고 혼돈스러운 내 삶, 다시 창조하여 주소서" (시 51:5-7, 10, 메시지)
이 고백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지금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입니다.
바로 지금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기도로 시작하십시오. 하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다음 질문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을 정리해야 합니까? 과거에서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이런 생각들을 하나님께 솔직히 말씀드리십시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고백하십시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로 죄를 덮어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이제 실천할 과제가 있습니다. 목록을 작성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서 균형을 잃은 부분을 보여주실 때, 그것을 적어 내려가십시오. 이 과정에서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지만, 진정한 고백은 감정의 영역을 초월합니다. 이는 단순히 여러분의 삶에 있는 알려진 죄를 인정하고, 그것을 버리고 옳은 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순수한 양심 사이에 높인 유일한 장벽은 바로 여러분의 자만심입니다.
욥기 17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개역개정).
앞으로 더 강해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힘든 시기, 어려운 날에도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싶다면 깨끗한 손이 필요합니다.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는가? 오로지 행동과 생각이 깨끗하고 순수하며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인정받을 것이다"(시24:3-5).
이유를 묻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시편37편 7절)
우리가 만족을 얻기 어려워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삶의 모든 사건에 대해 논리적 설명을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부분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좌절시킬 수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삶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통제권을 내려놓고 만족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설명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많은 일의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침묵하실 때, 즉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아주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그때는 시험을 치르는 시간입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볼 대 선생님은 항상 조용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서 침묵하실 때 여러분의 믿음은 시험받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이 시험의 순간, 우리는 중대한 결정의 기로에 섭니다. 통제권을 고집스럽게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겸손히 하나님께 맡겨드릴 것인가?
항복은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 3장 5-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온 마음을 다하여 오직 주를 신뢰하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라. 무슨 일을 하든지, 너는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를 인도하셔서, 네게 바른 길을 알려주실 것이다"(쉬운말).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께 아직 항복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입니다? 부엌과 거실은 항복했을지 모르지만, 침실, 옷장, 차고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과의 싸움에 지치지는 않았나요? 저항을 멈추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세요.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최고 경지입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행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시37:7)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설명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입니다. 오늘 통제권을 내려놓고 미래를 그분께 맡기세요.
하나님을 높이면 문제는 작아집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그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라"(시69편30절)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영적 시야가 확장되어, 그분의 존재가 우리 눈에 더욱 크고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시편 69편 30절 말씀중에 "위대하심을 선포하다"(magnify)는 것은, "돋보기로 보듯 크게 보다"하는 뜻으로, "찬양하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분의 위대하심이 우리 눈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시각의 변화가 우리에게 왜 중요할까요?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더 크게 보이면, 우리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대신 문제에 집중하면, 문제는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고 하나님은 작아 보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문제와 하나님 중 어느 것을 더 크게 바라볼 것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선택하고 그분께 집중하면, 그분께는 너무 크게 보이고 우리 문제는 작아집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커질수록, 그 어떤 문제도 그분께는 너무 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근심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직면한 어떤 문제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크신 분임을 기억할 때, 그 문제는 더 이상 우리를 압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돋보기로 보듯 크게 본다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성경은 시편 145편 3절에서 "여호와는 위대하시므로 높이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할 수가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제 크기와 위대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개미가 인터넷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인식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인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래보다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시작을 변화시켜 그분의 위대하심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을 두렵게 하고 걱정스럽게 만드는 문제가 무엇이든, 그 해결책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즉 그분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눈에 더 더 크게 보일수록, 문제는 작아질 것입니다.
아픔을 위로로 바꾸는 구속적 고난의 힘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고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린도후서 1장 4절)
여러분의 삶의 목적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여러분의 고통을 통해 타인을 향한 더 깊은 연민과 이해를 키우십니다. 이를 통해 여러분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가고 봉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다른 이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고통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의 마음에 우리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는 대신, 상처받은 다른 이들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고통을 구속하기를 원하십니다. 구속적 고난(Redemprive suffering)이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 아내 케이와 저는 아들을 자살로 잃은 아픔을 이렇게 사용하려 노력했습니다. 매튜의 죽음 이후 몇 년 동안, 친구는 낯선 사람이든, 잘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니가 많든 적든, 케이나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경험을 알기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는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고후 1:4-6. 새번역).
자녀를 잃은 아픔을 겪어본 부모만큼 같은 상실감에 빠진 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중독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큼 중독에 빠진 이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암과의 싸움을 경험한 사람만큼 암 진단을 받은 이의 두려움과 고통을 깊이 공감하며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이든, 그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그분은 그 고통을 다른 사람을 돕는데 사용하실 것입니다.
감사의 힘: 관계를 변화시키는 4가지 방법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에베소서 1장 16절)
인간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감사의 마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먼저, 다른 사람의 가치와 기여를 인정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헤미아는 다른 사람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네 가지 실용적인 방법을 보여줍니다.
개인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준 사람들에게 감사 할 때, 단순히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지 마세요. 느헤미야처럼 구체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세요. 그는 특별히 감사해야 할 40여 명의 개인과 단체를 일일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구체적인 업무를 인정하세요.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구체적으로 인정받을 때 진정한 감사를 느낍니다. 단순히 "잘했다"고 하는 것보다 "이런 구체적인 일을 해주어서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세부적인 일까지 인정했습니다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슬람은 옛문을 건축하여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아 자물쇠와 빗장을 설치하였다"(느3:6). 성경은 세세한 부분까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훌륭한 태도를 인정하세요. 부정적 정서가 팽배한 사회에서 긍정적 태도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3장 20절에서 느헤미야는 훌륭한 태도를 가진 사람을 언급합니다. "바룩이 열심히 보수하였다"(새번역). 다름 사람의 열정과 열의를 인정하면, 그들의 에너지가 세로워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추가 노력을 인정하세요. 느헤미야는 므레못이라는 사람을 두 번이나 언급하며 그의 추가 노력을 칭찬했습니다. 첫째, 그는 물고기 문 옆의 한 부분을 수리했고(느3:4), 그다음 대제사장 집 옆 부분도 수리했습니다(3:21). 느헤미야는 므레못의 추가 작업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도 이를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기여를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깊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때로는 대화로, 때로는 카드나 메모로 이를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의 노력과 태도를 알아차리고, 그들의 인내를 인정하며, 계속 나아가도록 격려하는 것이 제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담대한 믿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열쇠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에베소서 3장 20절)
담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습니다"(히 11:6,쉬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지침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믿음의 본보기를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거액의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투자하여 두 배로 불렀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 역시 투자하여 두 달란트를 더 얻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그들의 성과를 보고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마 25:21, 23).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겼습니다. 주인은 이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 내 돈을 은행에 맡겼다가 내가 돌아왔을 때 이자와 원금을 함께 받도록 했어야 하지 않느냐? (마25:26-27)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교훈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거룩한 모험을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이 주신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더 큰 축복을 경함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불충실한 종이 되고 맙니다.
새들백교회에서 경험한 일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120에이커(약 147,000평) 규모의 캠퍼스를 매입할 때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기에 오렌지 카운티에 그 많은 땅을 사는 거지?"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이것이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가?"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우리의 목표와 비전의 크기가 결정되는 법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께."
그러므로 안주하는 믿음을 넘어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담대히 전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나는 너희의 가장 큰 꿈도 이룰 수 있단다!"
구체적인 기도로 시작하는 인생의 새 출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자니라"(고린도후서 13장 5절)
인생의 새 출발을 위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에 갈망하는 변화를 하나님께 솔직히 아뢰십시오!
진정한 변화는 우리의 모호한 소망이 구체적인 결단으로 바뀔 때 시작됩니다. 문제를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변화를 하나님께 상세히 고백할수록, 그 변화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러분의 삶 중 어떤 영역에 새로운 시작이 필요합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어떤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와 성장을 이루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과거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그리워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관계를 되살릴 때입니다.
신체적 건강은 어떤가요? 더 건강한 선택을 하거나 만성 질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우선순위를 재정립할 필요는 없나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스케줄을 재조정해야 할 때입니다.
인간관계는 어떤가요? 정체되거나 악화된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직업이나 경력에 변화가 필요한가요? 현재 실직 상태이거나 직업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사고방식도 새로워져야 할 때입니다. 부정적이거나 걱정에 사로잡힌 생각들이 있다면, 하나님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습관, 자녀 양육, 일정 관리, 재정, 더 나아가 꿈과 비전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떤 부분에 변화가 필요하든,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강점이 실패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 12절)
실패는 우리 인생의 불가피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간에 언젠가는 실패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셨습니다. 체포되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오늘 밤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마26:31)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했고, 그 결과는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강점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실패의 주요 원인입니다. 우리는 종종 실제보다 자신이 더 강하다고 착각합니다. 수많은 증거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도, 우리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강점을 과대평가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하고, 중요한 순간에 패배하며, 결혼 생활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잃으면 불명예로 이어지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나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특정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 모두는 어떤 죄라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우리의 은사와 재능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계하지 않는 강점은 이중 약점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만심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가장 큰 실패, 즉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은 최후의 만찬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이는 매우 친밀하고 강력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큰 승리를 거둔 직후에 넘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강점을 과대평가하려는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대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힌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세요. 여러분의 강점이 오히려 실패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과 영원사이 :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기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이는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4장18절, 쉬운)
여러분, 무엇이 영원히 지속될까요? 이 질문은 우리 인생의 가치관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깊은 시련의 순간에서야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떤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지 마주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일시적인 즐거움과 세상의 인정, 물질과 권력을 쫓느라 영원한 가치를 놓쳐버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위기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영원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영적 각성제입니다.
하지만 꼭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바로 멈춰 서서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이 중요한 질문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무엇이 진정으로 지속될 것인가?"
세상은 현재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내년도, 천 년 후도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원과 천국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죠. 오늘을 위해 살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도 그것에 대한 욕망도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요일 2:17).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사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입니다.
유혹을 생각해봅시다. 유혹은 단순히 선과 악 또는 최선과 최악 사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유혹은 항상 지금과 나중,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 사이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나중에 혜택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고 지금 당장 혜택을 누릴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선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이는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쉬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든 그렇지 않든,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 삶의 기반이 무엇인지 평가해 봅시다.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우기로 선택합시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며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마주하는 반대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약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태복음 5장 10~12절)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압박을 받을 때, 다음 세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대는 여러분을 예수님의 모습에 더욱 가깝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알라.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내가 세상에서 너희를 택했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우리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그분이 겪으신 것과 같은 외로움, 낙담, 스트레스, 유혹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조차 이런 시련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대는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깊게 합니다.
믿음은 마치 근육과 같습니다. 근육이 늘어나고, 긴장되고, 시험받을 때 성장하는 것처럼, 믿음도 도전을 통해 강해집니다. 반대되는 힘이 없다면 근육은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반대와 도전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이 가장 혹독한 시험을 겪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련을 겪은 순수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됩니다"(벧전 1:7).
반대는 여러분에게 영원한 상급을 안겨줍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되도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우리말).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살다가 핍박받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단순히 여러분의 무례함 때문에, 혹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으로 인해 받는 반발은 하늘의 상급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독선적인 삶을 살다가 받는 핍박은 여러분을 순교자가 아닌 그저 말썽꾼으로 만들 뿐입니다.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받게 될 보상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온유함과 존중의 자세로 여러분의 신앙을 나눌 때, 언젠가 천국에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즉시 응답하지 않으실 때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시편130편5절)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다리기를 원하실까요? 단순한 인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적극적인 기대감을 품고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으세요. 기대하며 기다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유명한 개척자 다니엘 분(Daniel Boone)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그가 광야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길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흘 동안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지금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혼 생활이 어려워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더 나아지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경력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승진을 해야 하나, 내려가야 하나 이직을 해야 하나?"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때로는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낙심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기도에 의지하세요. 저도 인생에서 많은 기도를 드렸지만 응답받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24년 동안 거의 매일 기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고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든 안 하시든 저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살아갈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제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통제권을 갖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분에게는 옮기지 못할 산도, 해결하지 못할 큰 문제도, 달래지 못할 깊은 슬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계획이 있으십니다.
둘째,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받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내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니더라도 영원토록 그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영혼의 회복력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한일서3장1절)
우리는 스트레스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그 어는 때보다 회복탄력성이 필요합니다. 이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첫걸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스트레스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 중 하나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요한복음 10장 17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새번역)라고 굳게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하나님의 조건 없고 끝없는 사랑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회복탄력성 있는 삶의 근간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지옥의 권세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은 것이나 깊은 것이나 그 밖에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롬 8:38-39.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이 확신이 우리에게 회복력을 줍니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요한복음 15장 9-1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서 살아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정서적 기반이 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휘둘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게 대처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고 싶을 때마다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됐으니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일 3:1, 우리말).
하나님은 복제품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언14장30절)
여러분, 하나님의 선하심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 첫걸음은 감사의 마음으로 현재를 바라보고 불평의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풍요한 것은 만족하기 시작하고 비교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러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러움과 원망이 생기고 때로는 그들을 따라 하려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하나나님은 결코 복제품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오직 원본만을 창조하십니다.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수천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사실, 비교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외모, 성적, 배우자, 직업, 자녀 등을 비교하면 두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재, 항상 더 뛰어난 사람을 발견할 수 있기에 낙담하게 됩니다. 둘째, 역설적이게도 자만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보다 못한 사람도 언제든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이 편안한 것이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정신없이 일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는 낫다"(전4:6).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비교는 더욱 쉬워졌습니다. "이것 좀 봐요!"라고 외치는 게시물들을 매일 보면서, 우리는 부러움과 불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애쓰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그저 자신이 되는 것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부담감에 지치셨나요? 영적, 정서적으로 더 건강해지고 싶으신가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육신도 건강하나 시기하면 뼈마디가 썩는다"(잠14:30).
만족은 무언가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즐길 때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기 시작하세요. 여러분의 삶에서 어느덧 넘쳐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유하게 설계하신 여러분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만족과 기쁨의 비밀입니다.
세상의 바람을 이기는 방법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 4장 14절)
자연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인 바람은, 성경에서 다양한 삶의 상황을 상징하는 은유로 자주 등장합니다. 시험의 바람, 고난의 바람, 갈등의 바람, 유혹의 바람 등이 우리 삶을 흔들어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모든 바람을 견딜 힘을 주십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한 날에 원수를 대항하여 싸워 이기고 모든 일을 완성한 후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십시오." 여기서 "싸워 이기다"라는 단어는 "파괴적인 힘에 의해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인생의 풍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영적 가족과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서 힘든 날들을 견디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첫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창 2:18,우리말).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에게는 함께 견디며 서로를 지탱해주는 영적 가족, 즉 교회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의 다음 구절을 주목해보십시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준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의 속임수, 곧 거짓된 간계로 인한 술책에 넘어가 온갖 교훈의 풍조에 떠밀리고 휩쓸리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엡 4:11-12, 14, 우리말).
하나님의 교회는 흔들리는 영혼들을 붙드시는 그분의 거룩한 기둥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들 -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성도들이 거짓 사상과 "온갖 교훈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사람들의 신념은 한순간에 뒤바뀝니다. 하지만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에 진리였던 것은 앞으로 2천 년 후에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이사야 40장 8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우리말).
오늘날 우리 문화에는 잘못된 변화의 바람이 많이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만이요, 거짓이며,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시대의 혼란스러운 바람 속에서도 진리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대신 교회 가족과의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십시오.
영원한 가치를 위해 오늘의 선택을 점검하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장 62절)
인생을 살아갈수록 우리는 선택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과 기회의 연속입니다. 효율적인 삶의 핵심은 바로 올바른 선택에 있습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며 또 그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들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 단지 불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통찰은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며, 결과적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여줍니다.
자신의 방향을 알고 그것에 집중하면, 부차적인 일들에 휘둘릴 위험이 감소합니다. 영원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는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무엇인지 깨닫고, 단순히 좋은 일이 아닌 가장 중요한 일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집중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선택적인 삶을 사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가 가까이 오자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굳게 결심하셨습니다"(우리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강철 같은 의지로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분의 집중력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내가 하는 한 가지 일"이라고 말했지 "내가 하는 마흔가지 일" 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삶의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하면 이는 오히려 큰 장애물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거나, 예수님을 따르기에 앞서 다른 일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모두 집중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적당치 않다'하고 말씀하셨다"(눅9:62)
언젠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물으실 때,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가장 좋은 날과 가장 나쁜 날에 하나님은 함께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이사야 43장 2절)
인생은 종종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로는 갑자기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두려운 전화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이혼 서류가 도착했을 때는요? 파산 신청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을 때는요?
이런 순간에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누가 나를 신경이나 써주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직후, 제자들도 아마 이와 비슷한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제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게에 못 박은 유대 지도자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혼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다들 잘 있었느냐?' 하셨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양손과 옆구리를 보이시자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요20:16-20)
이 순간, 변화는 즉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제자들의 공포를 찬양으로, 두려움을 환호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여호화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죄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시34:18)
여러분, 인생 최고의 순간부터 최악의 순간까지,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절망감을 느낄 때도 그분은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사43:2,새번역).
오늘 여러분이 상처받고 있다면, "누가 나를 신경 쓰겠나?"라는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오늘 하루를 안심하며 보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본성 : 죄를 거부할 수 있는 힘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장 2절)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죄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분노와 씨름하고, 또 다른 이는 걱정이나 험담, 정욕 등과 씨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지속적인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의 깊이를 온전히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저지른 죄뿐만 아니라, 앞으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여기서 기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 삶에서 죄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기 위해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능력, 즉 죄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의지력을 넘어선 것으로,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8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우리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이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우리의 옛 본성을 함께 가져가셨고, 우리에게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본성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에 매인 육체를 죽여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인 줄 압니다"(롬6:6)
이제 죄는 더이상 우리 삶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이 유혹에 넘어갈 수 없듯이 우리의 옛 본성은 이제 더 이상 유혹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에, 이제 그분의 새 생명에 동참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죄의 힘을 꺾는 데는 의지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유혹을 물리치고,"죄와 사람의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장 43절)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간청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눅23:43). 이 한 문장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구원의 네 가지 특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 구원은 즉각적입니다. 예수님은 "오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거나 하나님과 분리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을 요청하는 그 순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둘째, 구원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망설임 없이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럴 수도 있다"라거나 "그렇게 되길 희망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라거나 "그러길 바란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생각해보겠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구원의 본질은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단순한 종교적 관습이나 규칙, 의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천국에 가서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땅에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를 원하시며, 항상 여러분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과의 관계를 위해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넷째, 구원은 실제 장소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이며, 영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범죄자에게 주어진 구원의 선택, 바로 그 선택이 지금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그분을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그분을 믿거나 천국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두 범죄자 중에 한 명은 예수님을 거부했고, 다른 한 명은 믿음으로 그분께로 향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같은 선택권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은 구원에 관한 이 진리를 믿으십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를 준비가 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오늘, 바로 지금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결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구원 약속을 믿고 받아들이세요. 그분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