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이 실패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 12절)
실패는 우리 인생의 불가피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간에 언젠가는 실패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셨습니다. 체포되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오늘 밤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마26:31)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했고, 그 결과는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강점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실패의 주요 원인입니다. 우리는 종종 실제보다 자신이 더 강하다고 착각합니다. 수많은 증거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도, 우리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강점을 과대평가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하고, 중요한 순간에 패배하며, 결혼 생활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잃으면 불명예로 이어지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나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특정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 모두는 어떤 죄라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우리의 은사와 재능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계하지 않는 강점은 이중 약점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만심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가장 큰 실패, 즉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은 최후의 만찬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이는 매우 친밀하고 강력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큰 승리를 거둔 직후에 넘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강점을 과대평가하려는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대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힌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세요. 여러분의 강점이 오히려 실패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과 영원사이 :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기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이는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4장18절, 쉬운)
여러분, 무엇이 영원히 지속될까요? 이 질문은 우리 인생의 가치관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깊은 시련의 순간에서야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떤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지 마주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일시적인 즐거움과 세상의 인정, 물질과 권력을 쫓느라 영원한 가치를 놓쳐버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위기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영원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영적 각성제입니다.
하지만 꼭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바로 멈춰 서서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이 중요한 질문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무엇이 진정으로 지속될 것인가?"
세상은 현재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내년도, 천 년 후도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원과 천국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죠. 오늘을 위해 살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도 그것에 대한 욕망도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요일 2:17).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사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입니다.
유혹을 생각해봅시다. 유혹은 단순히 선과 악 또는 최선과 최악 사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유혹은 항상 지금과 나중,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 사이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나중에 혜택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고 지금 당장 혜택을 누릴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선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이는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쉬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든 그렇지 않든,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 삶의 기반이 무엇인지 평가해 봅시다.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우기로 선택합시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며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마주하는 반대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약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태복음 5장 10~12절)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압박을 받을 때, 다음 세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대는 여러분을 예수님의 모습에 더욱 가깝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알라.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내가 세상에서 너희를 택했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우리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그분이 겪으신 것과 같은 외로움, 낙담, 스트레스, 유혹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조차 이런 시련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대는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깊게 합니다.
믿음은 마치 근육과 같습니다. 근육이 늘어나고, 긴장되고, 시험받을 때 성장하는 것처럼, 믿음도 도전을 통해 강해집니다. 반대되는 힘이 없다면 근육은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반대와 도전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이 가장 혹독한 시험을 겪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련을 겪은 순수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됩니다"(벧전 1:7).
반대는 여러분에게 영원한 상급을 안겨줍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되도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우리말).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살다가 핍박받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단순히 여러분의 무례함 때문에, 혹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으로 인해 받는 반발은 하늘의 상급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독선적인 삶을 살다가 받는 핍박은 여러분을 순교자가 아닌 그저 말썽꾼으로 만들 뿐입니다.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받게 될 보상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온유함과 존중의 자세로 여러분의 신앙을 나눌 때, 언젠가 천국에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즉시 응답하지 않으실 때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시편130편5절)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다리기를 원하실까요? 단순한 인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적극적인 기대감을 품고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으세요. 기대하며 기다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유명한 개척자 다니엘 분(Daniel Boone)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그가 광야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길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흘 동안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지금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혼 생활이 어려워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더 나아지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경력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승진을 해야 하나, 내려가야 하나 이직을 해야 하나?"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때로는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낙심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기도에 의지하세요. 저도 인생에서 많은 기도를 드렸지만 응답받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24년 동안 거의 매일 기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고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든 안 하시든 저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살아갈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제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통제권을 갖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분에게는 옮기지 못할 산도, 해결하지 못할 큰 문제도, 달래지 못할 깊은 슬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계획이 있으십니다.
둘째,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받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내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니더라도 영원토록 그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영혼의 회복력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한일서3장1절)
우리는 스트레스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그 어는 때보다 회복탄력성이 필요합니다. 이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첫걸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스트레스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 중 하나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요한복음 10장 17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새번역)라고 굳게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하나님의 조건 없고 끝없는 사랑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회복탄력성 있는 삶의 근간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지옥의 권세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은 것이나 깊은 것이나 그 밖에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롬 8:38-39.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이 확신이 우리에게 회복력을 줍니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요한복음 15장 9-1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서 살아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정서적 기반이 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휘둘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게 대처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고 싶을 때마다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됐으니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일 3:1, 우리말).
하나님은 복제품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언14장30절)
여러분, 하나님의 선하심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 첫걸음은 감사의 마음으로 현재를 바라보고 불평의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풍요한 것은 만족하기 시작하고 비교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러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러움과 원망이 생기고 때로는 그들을 따라 하려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하나나님은 결코 복제품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오직 원본만을 창조하십니다.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수천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사실, 비교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외모, 성적, 배우자, 직업, 자녀 등을 비교하면 두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재, 항상 더 뛰어난 사람을 발견할 수 있기에 낙담하게 됩니다. 둘째, 역설적이게도 자만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보다 못한 사람도 언제든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이 편안한 것이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정신없이 일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는 낫다"(전4:6).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비교는 더욱 쉬워졌습니다. "이것 좀 봐요!"라고 외치는 게시물들을 매일 보면서, 우리는 부러움과 불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애쓰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그저 자신이 되는 것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부담감에 지치셨나요? 영적, 정서적으로 더 건강해지고 싶으신가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육신도 건강하나 시기하면 뼈마디가 썩는다"(잠14:30).
만족은 무언가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즐길 때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기 시작하세요. 여러분의 삶에서 어느덧 넘쳐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유하게 설계하신 여러분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만족과 기쁨의 비밀입니다.
세상의 바람을 이기는 방법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 4장 14절)
자연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인 바람은, 성경에서 다양한 삶의 상황을 상징하는 은유로 자주 등장합니다. 시험의 바람, 고난의 바람, 갈등의 바람, 유혹의 바람 등이 우리 삶을 흔들어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모든 바람을 견딜 힘을 주십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한 날에 원수를 대항하여 싸워 이기고 모든 일을 완성한 후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십시오." 여기서 "싸워 이기다"라는 단어는 "파괴적인 힘에 의해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인생의 풍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영적 가족과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서 힘든 날들을 견디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첫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창 2:18,우리말).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에게는 함께 견디며 서로를 지탱해주는 영적 가족, 즉 교회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의 다음 구절을 주목해보십시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준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의 속임수, 곧 거짓된 간계로 인한 술책에 넘어가 온갖 교훈의 풍조에 떠밀리고 휩쓸리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엡 4:11-12, 14, 우리말).
하나님의 교회는 흔들리는 영혼들을 붙드시는 그분의 거룩한 기둥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들 -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성도들이 거짓 사상과 "온갖 교훈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사람들의 신념은 한순간에 뒤바뀝니다. 하지만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에 진리였던 것은 앞으로 2천 년 후에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이사야 40장 8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우리말).
오늘날 우리 문화에는 잘못된 변화의 바람이 많이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만이요, 거짓이며,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시대의 혼란스러운 바람 속에서도 진리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대신 교회 가족과의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십시오.
영원한 가치를 위해 오늘의 선택을 점검하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장 62절)
인생을 살아갈수록 우리는 선택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과 기회의 연속입니다. 효율적인 삶의 핵심은 바로 올바른 선택에 있습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며 또 그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들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 단지 불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통찰은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며, 결과적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여줍니다.
자신의 방향을 알고 그것에 집중하면, 부차적인 일들에 휘둘릴 위험이 감소합니다. 영원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는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무엇인지 깨닫고, 단순히 좋은 일이 아닌 가장 중요한 일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집중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선택적인 삶을 사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가 가까이 오자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굳게 결심하셨습니다"(우리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강철 같은 의지로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분의 집중력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내가 하는 한 가지 일"이라고 말했지 "내가 하는 마흔가지 일" 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삶의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하면 이는 오히려 큰 장애물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거나, 예수님을 따르기에 앞서 다른 일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모두 집중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적당치 않다'하고 말씀하셨다"(눅9:62)
언젠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물으실 때,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가장 좋은 날과 가장 나쁜 날에 하나님은 함께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이사야 43장 2절)
인생은 종종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로는 갑자기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두려운 전화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이혼 서류가 도착했을 때는요? 파산 신청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을 때는요?
이런 순간에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누가 나를 신경이나 써주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직후, 제자들도 아마 이와 비슷한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제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게에 못 박은 유대 지도자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혼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다들 잘 있었느냐?' 하셨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양손과 옆구리를 보이시자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요20:16-20)
이 순간, 변화는 즉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제자들의 공포를 찬양으로, 두려움을 환호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여호화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죄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시34:18)
여러분, 인생 최고의 순간부터 최악의 순간까지,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절망감을 느낄 때도 그분은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사43:2,새번역).
오늘 여러분이 상처받고 있다면, "누가 나를 신경 쓰겠나?"라는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오늘 하루를 안심하며 보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본성 : 죄를 거부할 수 있는 힘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장 2절)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죄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분노와 씨름하고, 또 다른 이는 걱정이나 험담, 정욕 등과 씨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지속적인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의 깊이를 온전히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저지른 죄뿐만 아니라, 앞으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여기서 기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 삶에서 죄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기 위해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능력, 즉 죄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의지력을 넘어선 것으로,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8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우리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이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우리의 옛 본성을 함께 가져가셨고, 우리에게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본성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에 매인 육체를 죽여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인 줄 압니다"(롬6:6)
이제 죄는 더이상 우리 삶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이 유혹에 넘어갈 수 없듯이 우리의 옛 본성은 이제 더 이상 유혹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에, 이제 그분의 새 생명에 동참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죄의 힘을 꺾는 데는 의지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유혹을 물리치고,"죄와 사람의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장 43절)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간청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눅23:43). 이 한 문장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구원의 네 가지 특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 구원은 즉각적입니다. 예수님은 "오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거나 하나님과 분리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을 요청하는 그 순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둘째, 구원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망설임 없이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럴 수도 있다"라거나 "그렇게 되길 희망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라거나 "그러길 바란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생각해보겠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구원의 본질은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단순한 종교적 관습이나 규칙, 의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천국에 가서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땅에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를 원하시며, 항상 여러분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과의 관계를 위해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넷째, 구원은 실제 장소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이며, 영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범죄자에게 주어진 구원의 선택, 바로 그 선택이 지금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그분을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그분을 믿거나 천국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두 범죄자 중에 한 명은 예수님을 거부했고, 다른 한 명은 믿음으로 그분께로 향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같은 선택권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은 구원에 관한 이 진리를 믿으십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를 준비가 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오늘, 바로 지금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결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구원 약속을 믿고 받아들이세요. 그분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